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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이민 생활 이야기/헝가리 라이프

헝가리 바버나(Babolna) 공원 & 말 목장 나들이

한주가 또 빠르게 지나갔다. 금요일 출근길에 보니 아침 하늘이 핑크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벨기에 에서 사장님이 오셔서 일이 끝난 후 팀원들과 간단히 회식을 하였는데 한국의 회식문화가 아니라서 정말 좋았다. 사장님을 따로 안챙겨도 되고 억지로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고 그저 열심히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면 되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어서 내 자신의 양심상 조금이라도 걸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동안 듣기만하고 한번도 가보지 않은 집 근처 공원을 다녀오기로 했다. 집에서 한 10분정도 걸으니 공원 입구가 나왔는데 출입문도 있고 그 옆에 매표소 같은 건물이 있어서 처음엔 동물원인줄 알았다. 그 건물은 아마도 관리사무소 인듯 싶다. 숲처럼 생긴 입구 쪽으로 들어가 조금 걷다보니 산양이 놀고 있는 울타리가 보였다. 방문객들을 위해서 공원안에 동물을 키우고 있었다. 울타리에 다가서니 저 멀리서 산양들이 뛰어와 반겨주었다. 처음엔 뿔달린 산양들이 달려와 무서웠지만 큰 눈망울로 먹을 것을 달라고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래서 옆에 있는 풀을 뜯어서 주니 배가 고팠는지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근처에 널린게 풀인데 사람이 주는 건 이 녀석들에게 또 다른 별미인가 보다. 한 녀석은 뿔을 나무에 비비며 뿔갈이를 했고 또 한녀석은 뒤에서 자기 친구를 뿔로 들이박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잠시 후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이 보였고 산양들 만큼이나 행복해 보였다. 헝가리에 와서 좋은 건 이렇게 삶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일이 끝난 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조용히 산책을 할 수 있는 여유가 특별하진 않지만 작은 행복을 주는 것 같다. 이제 와이프와 라온이가 온다면 이 여유를 더 행복한 시간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핑크빛깔 아침 하늘.
공원 입구가 꼭 동물원 같다.
멀리서 반갑게 뛰어 오는 산양들.
사이가 좋아 보이는 산양들.

  

아쉽지만 산양들과 인사를 하고 계속 걷다보니 꾸미지 않은 듯 꾸며놓은 나무들과 잔디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걸 느꼈다. 우뚝 솟은 나무 한 그루는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온 듯 했고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잔디는 늘 깨끗하게 정돈 되어 있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지만 때론 사람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모습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는 돼지 우리가 나왔다. 돼지 두 마리가 한가로이 오늘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마리는 부끄러운지 저 멀리 떨어져서 가까이 오질 않았고 나머지 한 마리는 사람이 좋은지 가까이 와서 애교를 부리는 듯 했다. 방금 회식 때 삼겹살을 실컷 먹고 와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 녀석들은 최후가 그리 비참하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사람들의 식탁을 위해 먼저 간 친구들을 대신해서 더 실컷 뛰어놀고 행복을 누리다 갔으면 좋겠다. 그래도 샤워라도 하고 올걸 그랬다. 삼겹살 냄새가 온 몸 가득히 퍼져 있어 빨리 이동해야 했다. 다음은 어떤 동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며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잘 가꿔진 잔디들과 우뚝 솟은 나무.
식탁과는 거리가 먼 행복해 보이는 돼지들.

 

이번엔 사슴 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옹기종기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더니 근처에 도착하기도 전에 황급히 달아나 버렸다. 친한 친구가 녹용을 강탈 당하는 걸 본 것인지 사람을 무척이나 경계했다. 산양이나 돼지처럼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데 멀리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했다. 큰 사슴들과 새끼 사슴들이 따로 모여 있었는데 경계를 하기 위함인지 다 같이 모여서 내가 있는 쪽을 계속 바라보았다. 이곳의 동물들은 정말로 모두 행복해 보였다. 친구와 연인 그리고 가족들로 이뤄진 모습들이 우리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런게 진짜 행복인데 우리는 그 귀한 걸 보지 못한 채 잡을 수 없는 욕망만을 쫓으며 불행해 하고 있는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깊은 사색에 잠긴 것 같아 복잡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공원 밖으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말 목장으로 향했다. 

황급히 도망 가는 사슴들.
새끼 사슴들을 데리고 경계하고 있다. 

 

말 목장에 도착하니 말들이 여유롭게 불금을 즐기고 있었다. 언제 씻었는지 짐작할 수 없는 자태를 뽐내며 우아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바버나는 승마가 유명한 마을인데 목장도 많고 승마장과 승마클럽, 승마 박물관 등 여러 승마 관련 시설들이 있다. 요즘은 시설이 낡은 편에 속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줄었지만 23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울타리는 말 목장 치고는 상당히 낮았는데 그 이유는 잠시 후 알게 되었다. 살짝 울타리에 기대었다가 약한 전류가 흐르고 있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사람에겐 큰 충격은 아니지만 말들에게는 엄청난 공포로 학습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말들은 울타리 주변으로는 와도 절대로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로 이 작은 울타리만 넘으면 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공포라는게 이렇게 모든 의지를 꺽어버리는 무서운 녀석인가 보다. 그래도 이 울타리 안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운지 행복해 보이긴 했다. 확대 해석하면 두려움에 의지를 잃은 채 울타리에 내 꿈과 희망을 가둬버린 모습이라고 생각 할 수 도 있지만 오늘은 불금이니 너무 무거운 생각은 자제해야겠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저 말들을 타고 이 넓은 목장을 둘러보고 싶다. 수정이 누나처럼 말과 교감하기 위해 각설탕이라도 준비해야 겠다. 

2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목장.
여유롭게 불금을 즐기는 말들.

 

공원과 목장 나들이를 마치고 평소와 다른 길로 집으로 향했다. 뒤쪽 길로 돌아서 가니 방금 봤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울타리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뒤로 풍력 발전소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좋아보이는 집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이 마을에서 꽤 유명한 집인데 더 최근에 지어졌는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도 나중엔 이런 한적한 마을에서 잠시 살아보고 싶다. 물론 한달이 못 되어서 답답하다고 하겠지만 가끔씩은 이런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그리울 것 같다. 이제 종종 오늘 만났던 동물들을 만나러 방문해야겠다. 오늘 행복과 여유를 느끼게 해줘서 고맙다. 산양아, 돼지야, 사슴아, 말아. 

풍력발전소와 잘 정돈된 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