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럽 날씨가 다시 더워졌다. 서유럽에 비해서 동유럽인 헝가리는 그나마 살만한 날씨라고 생각하지만 최근 계속 선선한 날씨였어서 그런지 갑작스레 찾아온 더위는 견디기 쉽지 않았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도 그늘 하나 없는 길이라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스페인은 40도라던데 그럼 도대체 얼마나 더운 것인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버스를 타고 1시간 가까이 달려 교르 역 바로 뒤에 있는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이곳 인구가 많질 않아서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많질 않았다. 육교를 통해 시청 쪽으로 건너가니 멋진 시청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로 치면 옛날 관아 건물을 그대로 쓰는 것 같은데 역시 유럽의 석조 건물들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웅장한 매력이 있다.
배가 고파서 제일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은 시청 건너편인 교르의 메인 광장 쪽에 있었는데 축제 기간인지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중세 시대의 복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현수막을 보니 바로크 웨딩이라고 써 있던데 뭔가 옛날 결혼식을 재현하는 행사인 것 같았다. 광장 쪽에 야외 결혼식처럼 의자를 세팅해 놓았고 그 주변에는 오픈 상점들과 행사 진행 요원들이 깔려 있었다. 점심을 먹기로 한 식당도 그 광장 바로 옆에 있어서 밥을 먹으며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헝가리 교르 맛집 Pallffy restaurant>
아직까지 헝가리에서는 이렇다할 맛집을 못 찾은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식당은 기대도 되었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앞섰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맛과 충격을 안겨다 줄지 궁금했다. 좀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인지 아직 손님은 많지 않았다. 헝가리에는 야외 테이블이 많은데 보통 매장에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위기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야외 테이블을 선호한다. 나는 이제 나름 헝가리에서 두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기에 자연스럽게 야외테이블에 앉았다. 파라솔이 펼쳐져 있는 야외 테이블이었지만 그리 시원하지는 않았다. 보통 헝가리는 습한 날씨가 아니어서 그늘에 들어오면 시원한데 오늘은 정말 날씨가 많이 덥고 습했던 것 같다. 나까지 총 3명이었기에 개인당 하나씩 메뉴를 선택하고 나눠 먹기로 하였다. 메인 광장에 있는 식당 치고는 가격이 엄청 비싸진 않았다. 이제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헝가리의 화폐단위인 포린트(FT)를 액면 그대로 한화로 착각하면 엄청 저렴해 보이기 때문이다. 저렴한 메뉴는 2,000FT(한화 8,000원)부터 좀 고가의 메뉴는 3500FT(한화 14,000원)까지 다양하였다. 우리 중에서 한번 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의 추천으로 메뉴를 빨리 결정할 수 있었다. 음료는 콜라와 환타를 시켰다. 거의 대부분의 식당이 유리잔에 레몬을 한 조각 넣은 뒤 갖고 와서 음료를 반 정도 따라준다. 탄산음료는 시원한 경우가 별로 없고 대부분 김 빠진 맛이 날 때가 많다. 냉장고가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스타일이 그런 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음식이 나올동안 사진을 찍고 놀고 있었는데 음식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그리고 메뉴판과 거의 같은 비주얼로 나와서 먹기도 전에 일단 만족스러웠다. 우리가 시킨 메뉴는 국수와 립 요리와 처음 보는 비주얼의 돼지고기 요리였다. 첫 번째 요리인 국수는 육수에서 삼계탕 맛이 나서 놀랬다. 마침 내일이 복날인데 헝가리 사람인 주방장이 그걸 노리고 이런 맛을 냈을 리는 없을 테고 정말 신기했다. 가장 먼저 먹은 일행 중 한 명이 산삼을 끓인 맛이 난다고 해서 날씨가 더워서 미각을 잃은 건가 걱정스러웠는데 그 말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삼계탕 맛과 비슷했다. 정말 양이 적었는데 이 정도에 1390FT(한화 약 5,600원) 이라면 가격은 양에 비해서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복날 하루 전 삼계탕 맛을 느끼게 해 줘서 만족스러웠다. 두 번째 메뉴는 립 요리였다.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맛보았던 바로 그 맛이었다. 정말 맛있었고 추가로 나온 소스에 찍어 먹으니 간이 딱 맞았다. 가격은 3690FT(한화 약 15,000원)으로 맛도 있고 양이 넉넉하여서 만족스러웠다. 요즘 아웃백에서 베이비 백 립이 35,9000원이기에 비싸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마지막 요리는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돼지고기 요리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젤 맛있었다. 아마도 겉을 살짝 튀긴 뒤에 쪄서 만든 것 같다. 물론 비계가 살짝 두꺼운 상태로 튀겨진 게 살짝 아쉬웠지만 크게 느끼하진 않았다. 그리고 밑에는 비트를 깔아놓은 채로 조리해서 고기와 같이 먹으니 깔끔한 뒷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가격도 2990FT(한화 약 12,000원)으로 저렴했다. 헝가리는 돼지고기가 신선하고 맛있어서 식당에서 뭘 먹을지 모르겠으면 일단 돼지요리를 주문하면 된다. 그럼 실패할 확률을 많이 낮출 수 있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나니 바로 옆 식당에서는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중세복장을 한 여자 한분이 지나갔다. 인도 아저씨가 용감히 가서 사진 부탁을 하니 기꺼이 승낙해 주었다. 연주 소리와 그런 모습들이 어우러지면서 정말 중세시대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중세 시대 복장을 한 분들 중에서 유독 인기가 많은 분이 있었다. 남자는 물론 여자분들도 사진을 찍자고 요청을 했다. 더운 날씨여서 복장 때문에 짜증이 날 수 있을 텐데 미소를 잃지 않고 다 찍어주었다. 난 와이프를 생각하며 그냥 사진만 찍어주었다. 중세 시대를 경험해 보려다 정말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릴 것 같아서 본능적으로 찍질 않았다. 아마도 저녁때쯤 해가 지고 선선해지면 본격적인 행사가 진행되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리허설을 하는 모습이 보였고 대부분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헝가리 사람들도 더위를 느낄 만큼 오늘 날씨는 정말 여러모로 힘든 날씨였다.
메인광장을 지나 좀 더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니 이 곳에도 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다. 가족단위 방문객들을 위해 한쪽에선 아이들을 위한 무료 인형극을 하고 있었고 이 쪽에도 많은 오픈마켓들이 먹거리와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메인 행사는 저녁에 해서인지 아직은 뭔가 분주해보이고 정리가 안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모두들 축제를 즐기는 듯 즐거워 보였다. 다만 우리에겐 날씨가 조금 야속했다. 날씨만 좋았어도 좀 더 오랜 시간 축제를 즐겼을 텐데 너무 힘든 나머지 주변 공원과 성당에서 진행하고 있던 결혼식까지만 구경하고 카페에서 맥주와 음료를 마신 뒤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식은 한 가지 재밌는 것이 신랑 신부가 행진을 할 때 주례를 보신 신부님의 양손을 잡고 함께 행진한다는 것이었다. 초대받은 하객은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힘껏 박수를 쳐주었다. 뭔가 소박하지만 소수의 하객들 모두가 끝까지 따라 나와서 함께 축복해주며 기뻐해 주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비록 날씨는 무척 더웠지만 오늘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사랑을 하며 즐거운 신혼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금으로 삭제되려나. 아무튼 빨리 교르에 나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하루다. 에어컨 없는 버스를 타고 시골 동네로 돌아오며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하게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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